바리따씨 방

한 언론인의 죽음

바리따 2016. 11. 16. 00:55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종종 PBS Newshour를 본다. 시간대가 마침 7시라 적당하고, 공영방송 특유의 절제된 톤으로 전달하는 이 뉴스는 마치 재료가 몇 개 안들어갔지만 기본에 충실한 샌드위치 같다. 아니면 감칠맛이 튀진 않지만 개운한 김치찌개 라던가.

어제는 유독 차분한 톤으로 시작하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공동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저널리스트 Gwen Ifill (https://en.wikipedia.org/wiki/Gwen_Ifill)이 암으로 투병 중에 사망했다는 얘기로 방송을 시작한다. 함께 뉴스를 진행했던 Judy Woodruff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늘 방송은 그녀를 추모하는 시간으로 보내겠다고 하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꽤 오래 이 뉴스를 통해 얼굴을 봐왔고, 이번 미국 대선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계속 방송에 등장했기에, 굉장히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생면부지인 나도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오죽 했을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뉴스 프로그램에서 한 시간을 완전히 할애하여 그녀를 추모하는 모습은 참 놀라웠다. 혹자는 뉴스가 그래도 돼? 하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뭐 좀 어떤가? 꼭 뉴스를 봐야겠다면 인터넷도 있고 타 방송사도 있다. 하루정도 이렇게 한다고 해서 큰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시간 동안 그녀가 어떤 경로로 언론인이 되었는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같이 얘기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전한 추모의 메세지를 전하며 방송을 채워갔다.

이런 문화가 많이 부럽다. 미국은 개인주의 사회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일견 타당하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방송을 통해 한 조직에서 구성원을 나름대로 소중하게 여기려 노력한다는 모습을 본다. 우리 나라에서 같은 상황이었어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그러나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덜 소중하게 여길거라는 생각때문이 아니고, 조직의 이익 앞에 개인을 외면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흑인이고, 여성이며, 흔히 말하는 널리 알려진 대학 출신도 아니었다. 50년대에 태어나서 공영방송의 얼굴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하지만 결국에는 나같은 외국인도 얼굴을 기억하는 언론인이 되었고, 오늘 아침에도 각종 신문과 정치인들로 부터의 추모 메세지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지만, 한 언론인을 추모하는데 한 시간의 뉴스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래는 그 방송이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http://www.pbs.org/newshour/updates/remembering-g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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