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따씨 방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또는 만나보고 싶은 사람

바리따 2019. 5. 27. 15:46

너는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 하고 물었을때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10년전쯤 면접장에서는 (거짓으로 준비했던) 정약용님입니다 하고 대답했었다. 왜냐는 질문에 "그냥 천재처럼 보이셔서요" 에 가까운 알맹이 없는 답변을 하고 왜 나는 진심으로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까?하며 자괴감에 빠졌었다. 그렇다고 면접에서 저는 딱히 아직 없습니다 라고 솔직히 말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마흔이 다되어가는 지금 이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또는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같은 사람이 아니겠지만, 대충 뭉뚱그려서 생각해본다.

첫번째로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열렬히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사람의 저작은 거의 다 읽었다. 그것도 대체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읽기 쉬운 수필로 시작해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 이건 참 그렇지"하고 동감하게 되고, 또는 "아 저 음식은 나도 먹어보고 싶다" 거나 "저 음악을 들어봐야겠다" 하고 문화적인 소개를 받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경험한 음식과 음악은 높은 확률로 내 취향에 맞는다. 그렇게 작가와의 유대관계를 쌓고나서 소설을 읽으면, 이게 뭐 그렇게 특별난가 (또는 대단한가) 하고 냉소짓던 그의 소설들이 다시 읽힌다. 소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고, 내 주변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구도인 상실-초현실세계에서의 경험과 극복-복귀와 치유라는 테마의 변주를 반복하며 즐길 수 있게된다.

두번째는 존 메이어. 존 메이어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처럼 기타를 칠 수 있는 사람, 그처럼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꽤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기술적 숙련도를 떠나서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 뭔가 이건 존메이어야 하고 느껴지는게 있다. 또 그의 행동을 보자하면 음악 너드 같이 느껴져서 좋아하게 된다. 별처럼 빛나는 너무 멋진 팝스타 이면서, 친해져서 같이 음악얘기하면서 놀고싶은 동네형 같은 이미지가 공존한다. 유튜브의 시계 관련 채널 Hodinkee의 talking watches 시리즈에서의 존 메이어를 보면, 순수한 그의 모습을 또 볼 수가 있다. 무지막지하게 비싼 시계들의 콜렉션을 이야기하면서도, "나 이렇게 돈많다" 라고 뽐내는것처럼 느껴지지가 않고 생산년도와 관련된 스토리를 줄줄 읊으며 "얘들 봐라, 진짜 멋지지?" 하고 순수하게 열광하는 모습을 본다. New light의 뮤직비디오에서의 병맛같은 모습이나, 젊은 아티스트의 공연에 초대되어 가서 스스로를 드러내보이지 않고 열심히 기타만 치면서 배킹을 하는 모습을 보며 소탈한 모습에 또 한번 감명을 받는다. 과거에 한 스캔들, 한 말실수 했던것을 생각하면, 반성하고 성장하는 모습이란 이런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은 노무현 전대통령님이다. 솔직히 말해, 임기 당시에는 기대한것에 못미치는 그의 행보에 실망도 많이 했었다. 그때에 비해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지금은, 대통령 한명 바뀌는 것으로 내가 원했던 일들이 단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당시에 실망하며 원망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대통령으로써의 그의 업적을 절대평가한다면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하는 질문은 아직도 답하기가 어렵고 답하기에는 나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정치인으로써, 그가 가지고 있던 비전과 강단과 실천력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연설을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을 받은 것은 그의 연설을 들었을 때 뿐이다. 그가 대통령으로써 내린 선택 하나하나를 모두 찬성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의 의도는 선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p.s: 다 쓰고나서 다시 면접보던 당시를 생각해봤다. 내가 면접자라면 위의 세명 중에 한명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조금 힘들것 같다. 흔하디 흔한 질문일텐데, 과연 몇 퍼센트의 면접자가 이 질문에 진솔하게 답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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