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놀이

Cider belly doughnuts @Albany, NY

바리차 2017. 2. 20. 05:53

코네티컷으로 이사온 후, 교수 미팅을 위해 한 달에 한 두 번 알바니에 가는 것으로 박사과정 마무리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갈 때마다 알바니 친구들과 만나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오는데, 메뉴 선택은 주로 내 몫이다. 오랜만에 갔으니 그 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나, 먹고 싶었던 것이 없느냐며 내 의사를 먼저 물어오는데, 그 때마다 내 대답은 "새로 생긴 곳 없어?" 이다. 

지난 주에 간 곳은 새로 생긴 곳은 아니고, 전부터 가려고 맘만 먹고 안 가본 곳이다. Cider belly doughnuts! C양이 과 행사가 있거나, 누구 디펜스 하는 날 선물로 도넛을 사 오면서 알바니 맛집이라고 여러 번 자랑을 했었다. 마침 점심으로 근처 펍에서 버거를 먹은 김에, 디저트는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http://www.ciderbelly.com/

알바니 사는 동안 주거지역이 백인들이 주로 사는 업타운이었고, 과건물이 다운타운에 있긴 했지만, 다운타운 캠퍼스를 기준으로 더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고 난 후엔 다운타운 쪽으로 가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저녁에 다운타운에 갈 만한 곳은 주로 펍이라 식사 후 음주운전하고 다시 집으로 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지나고 나니 다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싶다. 그렇게 나를 꽁꽁 보호하며 산 결과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차 버렸달까.

어쨌건, 이 사이더벨리도넛 가게도 다운타운에 있다. 평일에도 4시면 (혹은 도넛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길래 이른 점심을 먹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흐흠. 들어가니 생각보다 아늑한 느낌. 모자를 쓰고 자주색 후드를 입은 아저씨가 주인인 듯 무게를 잡고 카운터 옆에 앉아있었다.

던킨도넛보다 작은 크기의 사이더 도넛. 대략 10종류의 사이더 도넛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에선 가을 사과수확 시기에 사이더 도넛을 함께 먹는 전통이 있다. 대략 9월부터는 주말에 애플피킹(apple picking)을 가을소풍처럼 가곤 하는데, 동네 근처 사과농장에 가서 원하는 종류를 사과를 양껏 따 먹는다. 좀 배가 불러오면, 바구니나 비닐백에 집에서 먹을 것을 딴다. 무게를 파운드로 재서 파는 농장도 있고, 다양한 크기의 백에 미리 가격을 붙여서 팔아 거기에 알아서 따 가시오 하는 농장도 있다. 이를 테면, 소봉지 7불, 중봉지 10불, 대봉지 15불 이런 식. 대략 20불 안팎이면 한 달은 족히 먹을 사과를 종류별로 따갈 수 있다. 애플피킹의 좋은 점은 한번에 다양한 종의 사과 맛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람은 fuji (후지)에 입맛이 길들여져, 미국에 와도 굳이 후지만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후지가 은근 사과 종 중에서는 비싼 편. 무슨 사과를 대체로 먹어야 하나 싶은 사람들은 애플피킹 한 번 가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Jonagold를 대체제로 선택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 가을 애플피킹. 사과나무를 배경으로, 들고 있는 건 중봉지. 아, 미국 사과 얘기에 대한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마이클 폴란의 욕망하는 식물이라는 책을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덤으로) 사실 난 블루베리와 체리 피킹을 더 좋아한다. 미국 동부 지역에는 블루베리, 체리, 스트로우베리, 블랙베리, 라스베리, 애플 피킹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농장이 즐비하다. 수확의 시기만 다를 뿐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블루베리, 체리따기 삼매경에 빠졌던 2년 전. 저 한 바구니 가득해도 알바니에선 5불이면 족했건만... 올해는 못 하겠지 ㅠㅠ

다시 사이더 도넛 얘기로 돌아와서, 애플피킹을 하러 가면, 농장이나 농장 근처에는 애플사이더와 사이더 도넛을 팔고 있다. 난 둘다 막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따로 사 먹은 적은 없지만 가끔 한 두 입 먹으면 세상 맛있을 때도 있다. 사이더벨리도넛도 사실 너무 배가 불러 두 입만 베어 물었기 때문에 정말 맛있었다!  '멀리 오느라 고생했다고' 커피와 디저트를 알바니에 갈 때마다 사 주는 K양이 바리따씨와 먹으라고 또 도넛 한 봉지를 사 줬다. 덕분에 주말 아침을 커피와 함께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는...

사이더벨리도넛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도넛을 다음 날 먹어도 바삭함이 느껴진다는 것. 달긴 하지만 또 너무 달지는 않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알바니를 소재로 한 디자인 제품을 팔고 있었다는 점이다. 몇 개의 아이템을 보자마자, 알바니에 갈 날이 앞으로 채 10번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서글퍼지면서 자꾸만 엽서쪼가리들을 만지고 있었다. 결국 너무나 심플하지만 알바니의 정경이 다 담긴 엽서 한 장을 사고 말았다. 알바니의 상징인 허드슨 강과 The EGG, Empire state plaza의 주청과 빌딩이 예쁘게 그려져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보니, 어설프게 여러 정보를 담게 되었군! 어쨌건, 알바니를 다녀오고 난 후 더 잊어버리기 전에 다양한 미국생활의 기록을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한 주였다. 논문 수정을 너무 하기 싫은 부작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