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차씨 방

뉴올리언즈

바리차 2017. 1. 19. 01:44

2017.1.13-1.16

학회 차 2년 만에 다시 간 뉴올리언즈. 2년 전 학회는 발표를 빙자한 관광이 목적이었다면, 올해는 좀 더 아카데믹한 동기가 강했던 것 같다. 2년 사이 RA로 참여하게 된 연구의 중심에 뉴올리언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나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아이티 지진 이후 재난 복구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에 대한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 중 하나는, 500여개 되는 뉴욕타임즈의 카트리나, 아이티 지진 기사를 neoliberal paternalism의 framework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0261018316685691 참고. 학회 중 온라인 퍼블리쉬가 되었다!! 보통 연구를 알리는 걸 부끄러워 하지만, 이 연구는 우리끼리 나름 golden piece 라고 생각하기에!) 약 3개월 가량, 나는 이미 2저자가 수집한 기사들을 우리가 원하는 주제로 재분류하고 코딩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지역 주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재난 복구 과정에서의 정치사회적 담론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학습할 수 있었다. 이미 12년이 지났지만, 뉴스기사에서 접했던 최대 피해 지역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욕구가 수백번 학회에 가기를 주저했던 마음을 겨우 누른 것 같다. 

연구를 함께 한 줄리아나가 Lower Ninth Ward 지역에 우리가 머물 airbnb를 예약했다. 학회가 있었던 호텔과는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이동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이 곳은 지대가 낮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제방붕괴로 직접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곳이다.주민 대부분이 흑인/저소득층이었기 때문에 카트리나 재해 대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불평등을 많이 경험한 지역이기도 하다. 중/고소득 백인에 비해 자가용을 가진 비율이 낮았기 때문에, 대피 명령이 떨어진 이후 발빠르게 움직이지 못해 갇힌 사람들도 많으며, 재난 이후 피해 복구 과정에 있어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후 카트리나 복구 (주거,복지,경제) 정책이 결과적으로 대피해 있던 흑인과 저소득층을 지역사회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은 재해 이후 주요 담론 중 하나였다. 일단은 복구가 늦어져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주 정부 입장에서는 이 참에 지저분하고 범죄율 높은 저소득층 지역을 은근히 없애버리려는 암묵적인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racial cleansing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침수된 Lower Ninth Ward 사진출처: https://travellingassassin.com/2012/08/17/lower-ninth-ward-and-the-aftermath-of-hurricane-katrina-new-orleans/

우버를 타고 들어간 Lower Ninth Ward는 확실히 지대가 낮다는 느낌은 받았다. 10년이 지나서인가 대부분의 집은 복구된 것 같았고, 이미 재건된 집들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서, 피해가 아예 없었나? 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여기서 자주 운동한다는 우버 드라이버에게 물어보니, 음. 여기 다 잠겼었지. 라고 꽤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얘기해줬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집들이 복구가 되었고,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 다시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꽤 고요하고 평온한 지역이었지만, 아침에 간혹 미시시피강에 조깅하러 나오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뉴올리언즈는 미시시피강의 하구에 위치한 도시다. 때문에 1800년대 미시시피강을 타고 물자를 나르던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지막 날 아침, 숙소 바로 앞 미시시피 강가 산책로에 나가서 잠시 거닐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제방이 홍수가 나면 범람을 막아줄 마지막 보루인 듯 싶다. Lower Ninth Ward는 이 제방을 사이에 두고 강 수면 정도의 지대에 집들이 있다. 제방을 넘기만 하면 집들이 바로 지붕까지 잠길 수 밖에 없다. 멀리 높은 호텔이 밀집한 지역이 French Quarter다. 재즈바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3일동안 머무른 airbnb. 집 안은 African-American 문화의 장신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뉴올리언즈 인구의 3분의 2이상은 흑인이다.

사실 airbnb 주인에게 지역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는데, 주인의 집은 따로 있어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이틀 내내 학회 호텔에서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다보니, 지역 탐방 할 시간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 그래서 우버를 타고 호텔과 공항. airbnb를 오가며 신문기사에서 보던 지역 이름을 확인하고 그 지역의 모습을 겉핥기 식으로 본 게 전부다. 프렌치 쿼터에만 머무르다 보면, 이건 뭐. 사시사철 축제의 도시같을 뿐. 그 이면에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나 허리케인 시즌이면 여전히 루이지애나 주. 미시시피강 주변 지역 사람들은 대피와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산다.

그래도 사람들은 즐겁다. 머무는 동안 내가 만난 6명의 우버 드라이버 중 4명이 흥이 겨워 있었는데,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은 빵빵하게. 차가 흔들릴 정도로. 노래 부르는 건 기본이고. stop 싸인마다 춤을 췄다. 한 번은 줄리아나가 차가 너무 더러워서 좀 불쾌해 했었는데. 그래도 참을래. 공짜 공연을 해 주잖아. 라며 웃고 넘어가기도 했다. 1명의 드라이버는 롱아일랜드에서 사회복지사로 십 몇 년을 일하다 음악이 좋아 뉴올리언즈로 이사온 50대 백인 남자였다. 그는 흑인 특유의 흥은 없었지만 꽤 진지하고 성깔있는 재즈 연주가인 듯 싶었다. 뉴올리언즈의 많은 식당에서는 재즈밴드가 낮이고 밤이고 연주를 한다. 테이블로 직접 찾아와서 나만을 위한 연주를 해 주기도 한다.

돌아오는 날 아침 잠시 다시 들른 Jackson Square에서 한 시간 가량 멍하니 앉아 재즈밴드의 연주를 들었다. 앉아 있던 내 무릎을 치며 "smiling~~ 어쩌고 저쩌고~ 웃으면 복이 와요" 취지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러니까. 웃지 아니할 이유는 또 뭔가!!!

츄리닝을 입고 자유롭게 재즈를 느끼던 이들의 한참 보고 있자니 어쩌면 Lower Ninth Ward에서 건너온 이웃사촌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친근감이 들었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춤추는 지팡이 든 할아버지도 밴드 멤버

2년 전에 만난 젊은 연주자들. 오히려 백인이라 눈이 갔다.

뉴올리언즈의 명소 Cafe Du Monde에서 먹은 프렌치 도넛 Beignet와 카페오레. 학회의 든든한 서포터가 되어 준 바리따씨에게 만들어 주려고 도넛 믹스와 커피를 사왔다. 조만간 오늘의 메뉴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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