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는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같은 곳이다. 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전에 이 섬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3박4일 여행을 계획했다. 새벽같이(6시) 공항으로 출발하여 아침 8시반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 공항으로부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팔마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여행의 반정도는 흐리거나 비가 내렸고, 나머지 반정도는 날씨가 좋았다. 도착한 날 아침에는 비가 내려서 렌트카를 수령하고 공항 근처 쇼핑몰로 가 비를 피했다. 마요르카 지역의 빵이라는 엔사이마다(Ensaimada)를 먹었는데, 라드를 넣는게 특징이라 한다. 첫 한입은 맛있었는데 먹다보니 조금 느끼했다. 여기서 먹고보니 바르셀로나에 돌아와서도 이 빵이 자주 보였다(스페인 전역에서 쉽게 보인다고 한다).
쇼핑몰에는 그다지 볼게 없어 바로 첫날 숙소가 있는 Arenal 해변가로 이동했다. 숙소를 예약할때는 별 생각없이 에어비앤비 후기와 가격을 보고 했는데, 있어보니 이 구역은 젊은 친구들이 흥청망청 노는 것에 특화된 곳이었다(바리차는 적절하게도 대천 해수욕장이라고 비유했다). 숙소에 일찍 갔으나, 시간이 너무 일러 체크인은 하지 못하고 짐을 두고 팔마 대성당을 보기위해 시내로 이동했다. 오래간만의 운전에 시내의 복잡함에 고생을 좀 하고, 여차저차 주차를 했다.
팔마의 거리를 좀 걸으며 거리 구경을 하고(한국에서 갔으면 예쁘다고 신났을텐데, 바르셀로나에 있다가 가다보니 거리 모습에 큰 감흥은 없었던것 같다), 농부의 식당(Celler Pages)에서 오늘의 메뉴를 먹었다. 험블하고 마요르카식 요리가 어떤 느낌인지 느껴지는 좋은 식사였다. 점심을 먹고 팔마 대성당 근처를 걸었다. 요즘은 성당에 굳이 입장료를 내고 잘 안들어가게 되는데, 아주 아름답고 멋진 곳들도 결국 나중이 되면 어디가 어딘지 잘 구분하기가 어렵고 모르겠는 경우가 많아져서인 것 같다. 해가 쨍하게 비치지는 않았지만, 비가 그치고 걸을만해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팔마 거리를 구경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케밥을 하나 사서 둘이 나눠먹었다. 한끼를 레스토랑같은 곳에서 먹고나면 다음 끼는 좀 작게 먹어야 편하게 느껴져서, 바르셀로나에 온 후 두끼(점심, 저녁)를 모두 레스토랑에서 먹은 적은 없는 것 같다.


(둘째날)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고, 간곳도 모두 아름다웠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던 소도시들인 발데모사, 데이아, 소예르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발데모사에 먼저 갔는데 아침 열시 정도에 도착해 다행히 주차를 어렵지 않게 했지만, 더 심한 성수기였다면? 시간이 더 늦었다면? 주차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았다. 주차를 하면 선불로 기계에 요금을 지불하고 주차 티켓을 자동차 대쉬보드에 올려두어야 하는데, 이 기계가 대단히 후지고 사용 방법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긴 줄이 서있었고, 성공적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티켓을 받으면 사람들이 환호하는 우스운 상황이 있었다(결국 줄을 서고 돈을 낼때까지 체감상 이십분은 걸린것 같다).
그야말로 날씨도 마을(작은!)도 아름다워서,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좋았다. 거리를 구경하고, 소박한 Palacio와 수도원을 구경했다. 입장권에 포함된 쇼팽의 독주곡을 연주해주는 미니 콘서트도 볼 수 있었는데, (전에 들어보지 못한것 같은) 마음에 드는 한곡이 있었는데 10초 가량밖에 녹음을 못해서 나중에 찾아봤지만 곡 이름을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쇼팽은 그의 연인과 겨울의 추위를 피해 마요르카로 요양을 와서 발데모사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쇼팽 음악회같은 것도 매년 하는 모양이다.


바리차의 생일인 관계로 뷰가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었으나, 여행 동선을 우선시하기로 하고 마요르카식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발데모사 근처의 Ca'n Acosta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요르카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Ca'n은 ~의 집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아코스타의 집 이라는 거겠지. 야외 테이블에 앉아 햇볕을 쬐며(물론 그늘에 앉았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바로 뒤에 한국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먹는지, 신혼여행일까(요즘 마요르카가 신혼여행지로 인기라고 공신력없는 인터넷에서 본 것 같다) 등등 이런저런 소재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운전을 해야해서 아쉽게도 여행 내내 낮술은 하지 못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소예르 방향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데이아라는 곳이 있어 잠시 들를 생각이었다. 구비구비 운전을 하며 더 산골같은 곳으로 들어갔더니 멋진 풍경과 함께 데이아가 나왔다. 발데모사보다도 더 작고, 더 산골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더 예뻤다. 이번 마요르카 여행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따뜻한 계절에 일주일 정도 요양을 오고싶은 곳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차 티켓을 발권하러 기계를 찾으니, 발데모사와 같은 모양의 주차권 발권기가 있었다. 고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월하게 발권을 마치고, 이 어마어마한 기계를 다루는 것을 힘들어하는 영국에서 온 커플의 발권을 도와주었다. AI니 디지털이니 온 세상이 난리지만, 세상 한구석에는 아직 이런 단순한 차원의 어려움도 곳곳에 있다. 한시간 반정도 데이아를 걸었다. 고즈넉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조용한 동네다. 산으로 둘러쌓여 (날씨 좋은 날) 주변을 둘러보면 마음이 푸릇해진다. 흐린 날이라면 좀 별로겠지. 물론 도시녀인 바리차는 난 일주일도 못버틴다고 말할 심심한 곳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곳이라는데는 동의했다.

소예르로 이동했다. 발데모사, 데이아를 들러오니 비교적 시내라는 개념이 있는 타운이었다. 나쁘진 않긴 한데 그리 인상에 남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작은 타운인데도 불구하고 훌륭해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나는 (우리는?) 파인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경험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냥 패스한다. 소예르 항구로 가는 열차가 유명하여 이걸 타기로 했다. 주차티켓을 끊어놓은 시간과 열차 출발/도착 시간을 종합해보니 열차를 타고 소예르 항구에 갔다가 바로 돌아오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아쉽지만 소예르 항구는 열차를 타고 주마간산으로 보기로 했다. 편도가 1인당 10유로니까 상당히 비싼 구경이다. 그래도 언제 또 타겠나라는 여행지에서의 전가의 보도같은 논리로 적당히 마음을 다스리고 열차를 탔다. 소예르에서 소예르 항구는 열차를 타고 삼십분쯤 가는 것 같다.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풍경을 보는게 나쁘지 않았다. 얼핏 본 소예르 항구도 예쁜 곳이었지만, 휴양도시 느낌이나는 곳을 몇차례 가보니 조금 비슷비슷한 느낌이 있어 크게 인상에 남진 않는다. 그렇게 왕복 열차를 타고 소예르에 다시 돌아오니 해가 져있었다. 소도시는 해가 지면 가게들이 일찍 닫아서 밤이되면 유흥을 제외하고 할 일이 별로 없다.


다시 운전해서 숙소로 돌아온 후 해변가를 좀 걷고, 전날에는 케밥을 먹었으니 오늘은 빅맥이다 하고 포장을 해와서 먹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표준적인 맛이 주는 안정감이란(물론 가끔 먹어야만 맛있다).
(셋째날)
Arenal의 숙소를 나서 Calo des moro에 갔다가 알쿠디아로 가는 날이다.
Calo des moro는 아름다운 해변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유명해졌는지를 잠깐 찾아봤지만, 특별히 영화에 등장했다던지 하는 얘기를 찾지는 못했다(유명 사진 작가의 사진이 있다는 얘길 들은 것 같다). 아무튼 마요르카도 제주도같이 고속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되있는게 아니라 루트가 몇개 뿐이기 때문에, 동남쪽에 있는 칼로 데스 모로에 갔다가 동북쪽에 있는 알쿠디아로 가려면 원점에 돌아와서 다시 가는 형태로 이동을 해야했다. 한시간정도 운전을 해서 칼로 데스 모로 근처 주차장에 도착했고, 공영주차장(정식 주차장 보다는 공터에 가깝다)이 해변과 거리가 있어 이십분정도 걸었다. 시월이 되었는데도 날이 따뜻해서 해변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가파르고 급한 경사의 입구를 거쳐 해변에 들어서니 과연 예쁜 곳이기는 했다. 협곡이 둘러싸고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 색, 작고 신비로운 해변의 이미지 ...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작은 곳에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치타월을 깔만한 빈 자리를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정도의 인구밀도였다(과연 트렌드에 먼저 반응하는 한국의 여행객들도 여기서 유독 많이 본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기저기서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 그래서 적당히 앉아서 삼십분 정도 기분을 내고 사람이 좀 더 적은 초입 부분의 해변으로 이동했다. 발이라도 물에 담그려 했는데, 바리차가 이끼가 낀 돌을 걷다가 미끄러져 다쳤다. 꽤 크게 미끄러져 걱정을 했는데, 타박상 이상으로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바리차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여기서 미끄러졌는데, 부디 이끼낀 돌은 걷지 맙시다(조심한다고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닌듯).

칼로 데스 모로 구경을 마치고 알쿠디아로 갔다. 구글맵에서 알려준 길을 통해서는 숙소로 갈 수가 없어서 숙소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십분정도 걸어서 숙소에 갔다. 알고보니 우리가 주차한 곳에 주차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그럼 미리 좀 알려줬으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스페인 생활 한달만에 이런 데는 화를 낼것이 아님을 생각한다.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받는 인상이지만, 여기(스페인)는 그런 사소한것 쯤은 알아서 해야지 하는 느낌이 있다. 체계적으로 뭘 알려주거나, 사소한 절차에도 매뉴얼이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는것과는 반대편에 있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가령, 관공서에 10시 방문을 예약하고 간다고 하면, 9시30분에 가도, 10시30분에 가도 전혀 문제가 없다. 물론 10시에 맞춰가도 10시에 담당자를 볼 확률은 적다. 그냥 이때"쯤"에 와라, 하는 loose한 약속 같은 개념이다. 나도 어느정도는 (타인에게 폐가 안된다면) 대충대충,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지닐 때가 많은 사람이지만 이 나라에서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수준을 훨씬 넘는 것 같다.
아무튼 알쿠디아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구시가지를 구경했다. 구시가지는 크지 않아 금새 번화가를 다 볼 수 있었다. Can Polit에서 타파스 몇 접시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루프탑에서 석양이 비치는 마을의 모습을 구경한 후 달빛에 알쿠디아 성벽을 걸었다. 이 곳은 작은 타운이라 볼게 많지는 않지만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 위를 걸으며 산책을 하는 것이 특색있다.
(마지막날)
벌써 삼박사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숙소를 나서 알쿠디아 시내와 성벽을 좀 걸은 후 알쿠디아 항구로 이동해 해변을 걸었다. 해변의 휴양도시 느낌은 그리 새롭지 않았지만, 따뜻한 햇볕이 쬐는 날에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건 아직도 질리지 않고 여전히 좋다. 운전 때문에 맥주를 마실 수는 없었으므로 탄산수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밤늦은 시간으로 예약하여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드라크 동굴을 구경하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만장굴에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난 어릴적부터 지구과학에 왠지 큰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아마 제주도 만장굴과 마요르카 드라크동굴은 상당히 다른 동굴이겠지만 특별히 감회가 남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뾰족뾰족한게 신기하기도 하고, 동굴 안의 광경도 아름답고, 미니 콘서트도 괜찮았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은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있다면 그럭저럭 볼만한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조금 더 쾌적한 관람을 위해 시간대당 입장 인원을 줄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동굴 구경을 마치고 Porto Cristo(Quince 레스토랑)에서 저녁으로 농어구이와 해산물 스튜를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광경도 괜찮고, 음식 맛도 좋았다. 여행의 마무리로 부랴부랴 기념품샵에 들어가서 티셔츠를 사고 공항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서 운전 중에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을 만났다.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고,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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