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6개월 살기(25.8~26.2)

비 내리는 겨울, 바르셀로나

바리차 2026. 1. 28. 23:59

바르셀로나 살기를 선택한 이유는 날씨가 컸다. 안식년을 보내기에 가장 쉬울 것 같은 선택지로 영국이 있었지만 학부 교환학생으로 8월-2월을 보내면서 영국에서는 다시 '살지는' 말자 싶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꽤 음울했던 편이라 비 오는 날을 매우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해'가 없이 사는 것은 즐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 쉬울 것 같은 선택지였던 빌바오는 다행히 지인의 지인의 조언 덕에 살기를 피했다. 그 분은 한국인이 스페인에 대해 가지는 로망은 빌바오에는 없다고 했다. 비가 많이 오고, 겨울은 춥고, 언어도 어렵고, 북부의 사람들은 곁을 잘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 살기를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정말 쉽게 교수와 연락이 닿았고 이민법 개정으로 비자가 늦게 나온 것만 빼면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8월 중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매일 아침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가끔 비가 올 때도 있었지만 잠시 더위를 식혀주는 정도로, 이내  쨍쨍하게 해가 비쳤다. 

그런데 10월이 지나니 예상했던 것보다 비가 꽤 많이 내린다.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하루종일 맑은 날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손 꼽을 정도다. 날씨는 시시각각 변해서 여행 계획을 잡기도 어렵다. 가끔은 우산도 소용없는 폭우도 내린다. 바르셀로나의 배수 시스템은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는데 일분 정도만 폭우가 내려도 금방 물이 고인다. 지난 일요일에는 캄노우 경기장에 갔는데 경기 종료 직전 우박을 동반한 폭우에 아수라장이 됐다. 비가 그렇게 내리면 축구광 스페인 사람들도 다 피하고 보는구나 싶어 바리따씨와 나는 깔깔거리며 거의 마지막에 경기장을 나왔다. 

비가 자주 와서 안 좋은 점은 무엇보다 빨래가 안 마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건을 10장 가져왔는데 빨래가 2-3일이 지나도 안 마르니 씻는 게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매번 빨래방에 가서 건조기를 돌리는 것도 괜한 낭비 같다. 15분 건조기 돌리는데 3유로 정도 하는데 15분으로는 충분히 안 마르는 경우가 많다. 집 안 습도가 80% 정도 높고 난방기가 없다보니 집 안이 바깥보다 춥다. 패딩을 입고, 소파에서도 이불과 침낭을 이중으로 만들어 덮는다. 침실은 말 그대로 항상 축축하다. 오늘 보니 여분의 베개에 곰팡이도 피었다. 

바리따씨와 나는 카페나 학교에서 현지인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래 여기 날씨가 이런 거야?'라고 묻는다. 물론 아니다. '유난히 올해 춥고 비가 많이 와. 기후위기지 뭐' 라고 대답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폭설에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바르셀로나는 따뜻한 편이다. 코트에 목도리 정도면 밖을 다닐 만하고(때론 더울 때도) 추위에 피부가 시린 날은 한 번도 없었다. 1월 평균 기온이 9도에서 15도라니 초봄 날씨다. 그런데 하루에도 네댓번 확인하는 날씨 앱의 비 표시는 그저 실망스럽다. 나같은 집순이에게 비 오는 날씨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주곤 하는데 그렇게 집에 웅크려 있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죄책감이 든다. 바르셀로나 '즐겁게' 살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 

또 한 번 더 안식년의 기회가 올 때도 나는 바르셀로나 살기를 후보에 넣을 것이다. 어쩌면 1순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바르셀로나가 그 때는 빌바오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 두렵기도 하다. 어느 때가 되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혹은 살기 좋은 곳의 정의가 바뀌게 되겠지.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 오늘 하루도 미래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자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