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6개월 살기(25.8~26.2)

Running in Barcelona

바리따 2026. 2. 6. 00:40

여섯달 간의 바르셀로나 생활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다. 게으름을 이겨내고 감각이 생생할 때 이런저런 것들을 적어두려 한다. 오늘은 러닝 얘기.

개인적인(러닝 관련된) 얘길 먼저 좀 하면, 그동안 아주 캐주얼하게(기록 갱신에 별 관심이 없다)라도 십년은 넘게 러닝을 해왔고, 미국에서 생활할 때 러닝 경험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곳에서도 꾸준히 러닝을 이어가려 했다. 좋은 기억이라는건 1)평소 러닝 환경, 2)레이스 대회에서의 분위기 같은 것들인데,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에서의 환경이 확실히 더 좋았던것 같다. 

미국에서 거주한 동부의 기후가 전반적으로 (한국 보다는) 달리기 좋았고, 한국에서 거주하는 세종시에서는 주로 호수공원, 금강변, 작은 천변 등의 루트를 달리는데, 묘하게 자연 친화적이지 않은 느낌이 있다. 울창한 나무들을 곁에 두고 흙길을 뛰며, 호수나 강가를 뛰며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던 그때가 종종 그립게 느껴진다(십년이나 지난 기억이기 때문에 다소 미화 되었을 수도 있다.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러번 읽어서 하루키가 보스턴에서 뛰었던 묘사와 내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기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레이스는 가끔(일년에 1~2회 정도?) 참가하는 편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하프와 풀 마라톤을 한번씩 뛰고, 2019년 10k 대회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하기도 어렵고, 참가비도 비싸고, 너무 상업화된 행사처럼 느껴졌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릴 생각도 없고, 기념품은 티셔츠 하나면 충분한 나에게는 너무 대단한 마음을 먹고 오픈런처럼 참가신청을 해야하는 대단한 행사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주로 동네에서 하는 작은 레이스에 참여했었다. 딱히 참가 신청이 경쟁적이지도 않고, 레이스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와서 소소한 박수와 응원을 보내준다. 더 진지하게 퍼포먼스를 향상시켜 보스턴, 뉴욕 마라톤 같이 쟁쟁한 대회에 나가는 것도 좋았겠지만, 지역 행사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물론 한국에도 지역에서 개최하는 동네 대회가 있긴 하지만, 대회공고 홈페이지나 경험담을 읽어보면 굳이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서두가 길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의 러닝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여기에서의 경험도 즐거웠고 나름대로 아쉬움도 있었다. La Mercè 축제와 함께 열리는 Cursa de la Mercè(9월, 10k), 개최 102회차인 La cursa Jean Bouin 2025(11월, 5k), Cursa Sant Antoni(1월, 10k) 총 3회의 레이스에 참여했다. 2월에 개최하는 하프 마라톤에도 참여하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 세번 다 레이스 분위기도 좋았고, 바르셀로나 풍경도 실컷 볼 수가 있었다. Jean Bouin은 바리차의 첫 레이스 참여라는 쾌거(!)가 있었다. 레이스 참가비는 대체로 인당 20유로 안팎이어서 4만원 정도. 패키지(티셔츠, 배번표, 스낵 등)를 정해진 날짜에 부스에 가서 오프라인으로 받는 아날로그 방식도 재미있다(좀 귀찮기도 하지만). 패키지를 받으러가면 부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대회를 앞둔(일주일 전쯤) 러너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분위기도 시끌벅적하고 흥겹다.

러닝 패키지 수령

저렴한 참가비에 맞게 애프터 파티 같은건 거의 없다(물론 크고 참가비가 높은 대회에는 있는 것 같다). 레이스 시작 십분, 이십분 전쯤까지 알아서 출발선 앞 행렬에 서있다가 다 뛰면 물 한잔과 약간의 간식을 받아서 마시고 먹고, 거의 바로 해산하는 분위기다. 바르셀로나를 가로지르는 큰 길중 하나인 Gran Via를 따라 달리다보면 바르셀로나의 여러 랜드마크들과 아름다운 건물들과, 잠옷 차림의 할머니가 테라스에 나와서 손도 흔들어주는 모습, 관광객들이 구경하다가 타이밍을 맞춰서 통제된 길을 부랴부랴 건너기도 하고(가끔 좀 위험하기도 하다), 지인이 지나갈때 반갑게 소리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마주한다. 그러면서 이 도시와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진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Cursa de la Mercè 시작 전
Cursa de la Mercè 마치고
La cursa Jean Bouin(102번째 대회) 출발 직후
Cursa Sant Antoni - 출발선으로 가는 길

레이스 말고 평소에 달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는 생활 러닝을 하기에 약간 불편한 도시였다. 5~10킬로 정도를 쉬지않고(방해받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강이 있는 곳(서울의 한강처럼)에서는 강을 따라 달리면 되고, 강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라는 천변 형태로 조성된 곳이 많아 달리기가 편한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바르셀로나(특히 내가 거주한 동네 근처)는 구역이 작아서 신호등이 자주 있거나(그래서 자주 서야한다), 길이 좁은데 통행량이 많아 다른 행인들을 신경써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좀 제대로 달려야지 마음 먹었을때는 바르셀로네타 해변, 몬주익 공원, 시우타벨라 공원까지 지하철을 타고가서 달리고는 했다. 그런데, 러닝 복장을 입고 지하철을 타면 괜히 스스로 민망하기도 하고(물론 사람들은 별 신경쓰지 않는다), 돌아올 때 땀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공공자전거를 탈 수도 있지만, 거리가 멀지 않아도 신호가 자주 걸리다보니 생각보다 오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그리고 공공자전거의 관리 상태가 좀 별로라 빌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레이스 외에 그런 곳에 가서 "제대로" 달렸던건 열번이 안될 것 같다. 그래도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의 일출을 보기도 하고, 황영조 선수가 달렸을 몬주익 공원을 달려본건 좋았던것 같다(경사가 정말 심하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일출

결국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달린 루트는 바르셀로나를 가로 지르는 큰 길중 하나인 Diagonal이다. 집에서 오분만 나오면 갈 수 있고, 큰 길이다보니 행인이 많아도 피해다닐 수 있으며, 신호등의 방해 없이 상당히 길게 달릴 수 있는 구간도 있다. 바르셀로나는 해변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록 고도가 올라가서(가령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구엘공원을 걸어가면 언덕을 올라야 한다) 달리는 방향도 운동 강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Diagonal은 비교적 높낮이 변화도 크게 없는 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당히 많은 러너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혹시 바르셀로나에서 뛸곳을 찾는 분들은 이 길을 둘러보시길(물론 바르셀로네타 해변이나 몬쥬익 공원, 시우타벨라 공원이 가깝다면 그쪽이 더 좋을 듯). 후에 바르셀로나에서의 러닝을 떠올린다면 Diagonal이라는 널찍한 길을 가운데 두고 행인들 사이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던 장면을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넓은 길에서 보이는 청명한 하늘, 여름의 푸릇푸릇한 나무, 겨울의 크리스마스 장식, 야외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당일의 조용하고 한가한 Diagonal(이 거리는 왠만하면 한가할 때가 없다) 모습.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신호등마다 기다리면서 툴툴대던 것. 

여름의 Diagonal(청명한 날이 많은데 사진이 없네)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 거리
평소에는 엄청나게 붐비는 곳이지만 크리스마스날은 예외
2.5Km 구간에 보행신호가 20개(건널목X, 횡단보도O)


p.s: 레이스에서 마주친 충격적인 장면 하나. 레이스 시작 전 남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간이화장실 중 이렇게 생긴 것이 있었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여럿봤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있는 가운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개방된 형태로 소변을 보는 것에 놀람. 찾아보니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도 자주 사용된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보는 것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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