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이사를 했다. 그러고보니 올해만 벌써 4번째 집이다. 집을 구하고, 정리하고, 다시 집을 구하고, 정리하고, 또 집을 구하고 정리하고. 살면서 '주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었나 싶다.
스페인으로 가기로/오기로 결정한 이후 나는 바로 스페인에서 집을 구하는 플랫폼인 이데알리스따(idealista)에 거의 매일 들어갔다. 유투브로 바르셀로나의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한 후, 위험도와 학교와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후보지를 1.GRACIA 2. EIXAMPLE, 3.SANT-GERVASI 정도로 추렸다. 그 때가 3-4월쯤이었으니 꽤 많은 시간을 집 구하는데 투자한 셈이다. 바리따씨는 뭐 벌써부터 그러냐고 시간낭비라고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같이 봐 주지 않는 바리따씨가 무척이나 얄미웠다.
집 자체만 보자면 나는 너무 현대적이지 않고(오래된 유럽풍의 건물), 겨울에 너무 춥지 않고, 가능하면 테라스가 있는 곳을 원했다. (에어비앤비에 한 달 살면서 둘이서 움직여도 불편하지 않은 부엌이 4번째 조건으로 추가됐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이데알리스따에서 봐 둔 집 3군데에 뷰잉을 하고 싶다고 연락했는데, 회신이 온 곳은 두 군데였다. 입주날짜가 한달 뒤라고 했더니 한 군데에서는 집 뷰잉을 한 후 12일 안에는 입주를 해야 한다고 시기가 맞지 않다고 거절당했다. 첫번째 집도 주인이 우리를 맘에 들어해야 계약을 할 수 있다며 일단 집을 보여주긴 했으나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5개월 남짓 짧은 계약을 하는 외국인을 선호하지 않는 주인도 있는 것이다. 결국 바리따씨 판단이 맞았다. 나는 쓸데없이 시간낭비를 엄청 했다. 이사 2주 전부터 집을 구하기 시작하면 충분했다. 그래도 나는 우겼다. 내가 몇 개월 동안 가능한 가격대의 집들을 꾸준히 봐 왔기 때문에 조금만 봐도 가격 대비 집의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두 번째 집 뷰잉을 하고 바로 가계약을 했다. 첫번째 후보지인 GRACIA 지역에서 테라스가 딸린 오래된(100년은 넘었을 듯) 유럽풍의 Mezzanine로(스페인어로는 entresuelo. 두 개 층 사이에 위치한 중간층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1층과의 차이를 모르겠다. 유럽은 0층이 1층이니, 한국으로 치면 2층에 위치한 집이다). 구하고 보니 2017년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들렀던 로컬 타파스 가게(sol soler) 바로 근처다. 기념하여 이사한 날 저녁 우리는 8년만에 그 타파스 가게에 다시 들러 축배를 들었다.
바르셀로나 주거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최근 관광객을 상대로 물총 테러를 하는 등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급격히 오른 주거비 때문이라고 들었다. 바르셀로나 월평균 임금이 세전 3천 유로가 조금 넘는 수준인데, 좀 안전한 지역의 원베드룸 월세가 천오백 유로는 줘야 하니 에어비앤비 등으로 주거비를 올려놓은 관광객이 미울 법도 하다. 관광이 아닌 생활을 하러 온 나 같은 사람도 집세만 생각하면 관광객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우리처럼 플랫폼을 통하게 되면 대부분 에이전시가 중개인 역할을 하는데(계약은 했지만 주인 이름도 모른다/계약서에는 그냥 owner로 되어있을 뿐) 중개료가 한 달 월세에 부가세까지 붙어 한국에서 낸 부동산 중개수수료보다 훨씬 더 나갔다. 5개월을 짧게 살아도 보증금으로 2개월치 월세를 내야 하며, 이 보증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나중에 전액 돌려받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벌써부터 아깝다. 그래 로망비라고 해 두자. 언제 바르셀로나에 살아볼 거야.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있는데!!
집 앞 광장에는 시계종탑이 있다. 15분마다 종이 울려서 가끔 중세시대를 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몇 시간에 한 번씩 테라스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한다. 앞집 테라스에 나온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도 한다. 모기와 각종 벌레들이 (심지어 바퀴벌레도 ㅠㅠ)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집에 있는 동안은 방충망도 없는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모기향을 사서 피우고, 모기약을 하루 세 번 바르고, 살충제를 아침 저녁으로 뿌려도 괜찮다. 예쁜 곳에 살려면 몸이 불편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사는 하루하루다.
이제 남은 것은 엠빠드로나미엔또와 TIE 신청이다. 스페인은 6개월 이상 장기거주비자를 받으면 반드시 외국인등록증(TIE)을 받아야 하는데, 이걸 신청하려면 거주지등록(엠빠드로나미엔또)을 먼저 해야 한다. 이게 제일 관건이다. 신기하게도 여기서 행정 처리를 하려면 먼저 관할 공공기관(시청, 경찰서 등)에 온라인으로 예약(CITA 씨따라고 한다)을 잡아야 하는데,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다행히 엠빠는 10월 첫 주로 잡을 수 있었고, TIE 씨따는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 TIE가 있어야 해외여행을 하는데 부담이 없는데 걱정이다. 그래도 비자 때문에 맘 졸였던 두 달을 생각하면, 바르셀로나 중심가 테라스에 앉아서 한가로이 기록을 남기는 오늘이 큰 축복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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