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부터 1년의 연구연수(안식년)가 시작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살고 싶었던 스페인으로 안식년을 떠나자고 바리따씨와 결정했다. 기간은 최소 6개월 이상. 5월 말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아무리 빨라도 6월에 출국이 가능했다.
올해 1월부터 급하게 적을 둘 곳을 알아보았다. 연구원 지인 소개를 받아 빌바오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던 교수님과 연락이 닿았고, 그 교수님을 통해 마드리드에 있는 박사과정 선생님으로부터도 정보를 얻었다.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 바르셀로나 대학에 있는 연구소에서 유사한 연구를 하는 교수님을 찾았다. 놀랍게도 연락한지 3일 안에 방문교수가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처리에 '일이 술술 잘 풀리는군'하며 2월을 신나게 보냈다. 늦어도 7월 초 출국을 목표로 나름의 준비를 천천히, 그러나 절대 늦지는 않게 하고 있었다. 바리따씨는 7월부터 휴직을 하기 위해 6월까지 보고서 마무리 작업을 바쁘게 했다.
그러나 8월이 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이다. 2-4주면 나오다는 스페인 비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비자 신청은 5월 21일에 했다. 그 전에 친정엄마와 유럽 여행을 잡아두었기에 여권이 필요했고, 다녀와서는 건강검진 절차 때문에 조금 시간을 보낸 후였다. 적어도 6월 둘째 주면 비자가 나올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비자가 거절됐다. 대사관에서 5월 20일 스페인 이민법 개정 때문에 우리 비자가 거절되었고, 신청했던 비자 타입을 바꿔서 재신청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 개정 정보를 스페인대사관에서 몰랐다는 사실에 1차 실망. 대사관은 여전히 비자 타입을 왜 바꿔야 되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2차 실망. 나 같은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관 홈페이지 비자 정보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3차 실망. 최대 4주가 걸린다는 비자 심의 프로세스가 6주가 넘어가도 감감무소식라는 사실에 실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비행기표를 2번 연기하고,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와중에. 바리따씨와 나는 하루키의 유럽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를 읽으며 마음 수양을 하고 있다. 먼 북소리는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집필할 당시의 3년간 그리스, 이탈리아 체류기를 주로 담고 있다. 여러 편의 에피소드에서 그는 남유럽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체념을 필요로 하는가를 (결코 체념하지는 못한 듯한 짜증난 상태로) 전달한다. 대부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부재, 노동의 부족'이 매일의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특히 공공 행정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거의 바닥이다. 그 때가 1980년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싶으면서도,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별로 변한 게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지금의 기다림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주기도 더하기도 한다.
8년 전 미국에서 귀국한 후, 하루 단위의 속도로 사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데 한달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쫓기는 듯한 삶에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예측 가능한 시스템 안에 사는 편리함에 젖어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은 불안감만 가득한 기다림이자 체념이 반복되는 시간이다. 어쨌거나 곧 떠날 것이고, 예측 불가능해질 하루를 허허 웃어넘길 마음의 여유가 빨리 찾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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