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6개월 살기(25.8~26.2)

한국에 돌아오고 이주일

바리따 2026. 3. 13. 12:18

한국에 돌아온 후 이주일이 지났다. 

남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후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직전에는 장염에 걸려 4일 가량을 집에서 쉬기만 했다. 귀국 D-10쯤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어서 아쉬웠지만, 도저히 정신을 못차리고 누워있었다. 장염에서 회복된 후에는 그동안 정든 장소들과 가보려했지만 못가봤던 곳들을 가고, 소소하게 귀국 선물을 사고(소소하지만 부피와 무게는 소소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물건 나눔을 하고, 방을 빼기 위해 정리를 했다. 그렇게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돌아간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감상에 젖을 틈이 별로 없었던것 같다. 

그래도 돌아오기 직전 주말에는 시체스에 가서 아주 멋진 석양과 노을을 봤다. 지중해의 멋진 하늘과 태양을 곁에 두고 살았는데도 매번 타이밍이나 날씨가 맞지 않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명한 석양을 본 것 같다. 열심히 사진도 동영상도 찍었지만, 직접 보는 것의 느낌을 담기는 어렵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다는 것은 총체적 경험인 것 같다. 터키 카파도키아와 플로리다 키웨스트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던 날들을 생각했다. 세종시의 석양도 그럭저럭 볼만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체스의 석양

반년동안 살면서 짐을 거의 늘리지 않으려 했는데도 짐을 다 챙기니 트렁크와 가방이 터질듯 했다. 틈틈히 샀던 옷가지들과 여행하며 샀던 기념품, 귀국 선물 정도인데 주섬주섬 모으니 무게와 부피가 꽤 나갔다. 원래 계획은 Correos로 국제소포를 보내서 짐을 어느정도 덜어내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려고 했는데, 한 박스를 실하게 담아가니 배송 비용이 200유로 정도 나왔다. 천천히 배송되도 되니 더 싼건 없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요금 진짜 비싸지? 나도 알아" 하는 공감의 표정과 함께 웃으며 고개를 저을뿐이었다. 박스 안 물건의 가치보다 배송비가 더나온다는 생각에 도저히 그렇게는 보낼수가 없었고, 결국 모든 짐을 이고지고 비행기를 탔다. 가방마다 몇kg을 담을지, 부피는 어떻게 맞춰야할지, 고민고민하면서 짐을 쌌다가 풀었다. 어떻게 짐을 싸도 기내 반입 가방 무게가 상당해서 엄격하게 따지면 상당한 추가금을 낼 수도 있을것 같았다. 비용을 더 내라면 내야지 뭐, 하고 체념했다.

떠나는 날 마지막 식사는 그라시아의 Mercat에 있는 해산물 바 같은 곳에서 먹었다. 음식의 스타일(많은 맛의 레이어가 있거나 장식이 많은 것 보다는 신선한 재료로 간결하게 요리하는)이나 식당의 분위기(고급스럽고 딱딱한것 보다는 편하고 자유로운)가 우리의 마지막 식사 장소로 잘 어울리는 곳 같았다.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스페인어 메뉴판을 보면 항목을 하나하나 찾아봤어야 하는데(그나마 실내에서는 인터넷이 안터져서 그냥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고르는 때도 많았다), 이제 그럭저럭 메뉴판을 읽는게 어렵지 않게 느껴져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식사는 시장에서

둘이서 거의 80킬로에 가까운 짐을 지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자주 타지 않아서 매번 잊어버리지만, 서울에서 카카오택시를 부르는 것처럼 원활하지는 않다. 콜을 잡은 택시가 지도에서 가깝게 표시되고 5분 안에 도착 예정이라고 표시된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이번에도 택시가 오는데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가까워져 초조한 마음과 함께 정말 스페인다운 부분 중 하나를 마지막까지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평소 자주 걷던 Diagonal 거리를 지나며 구경했다. 이 순간 이후로 이 거리를 언제 걷게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렇게 체감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것 같기도 하다. 사십대를 훌쩍 넘은 지금, 여러 장소나 거리들과 이별했고, 문득 한번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는 곳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 생각없이 살아간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는 않지만 정을 붙이기에 긴 시간도 아닌데 나름대로 도시와 거리에 애착을 느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과연 짐에 대한 추가비용없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 했다. 겉으로는 더 내라면 그냥 더 내자고 우리 둘다 호기롭게 얘기했지만, 아마 추가비용이 나오면 국제배송으로 보내는 비용인 200유로에 가깝게 나올 것으로 생각되서 (우리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추가비용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었다. 체크인 데스크에서 수속을 하는데 비용을 추가로 내야한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잘 처리가 되어 무사히 넘어갔고, 탑승할때도 특별히 까다롭게 보지 않아서 무사히 추가비용 없이 비행기를 탔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한국행 비행기이니 당연하게도) 한국인 여행객이었다. 기내반입용 가방을 우리처럼 꽉 채운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많은 한국사람들과 함께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자니 벌써 한국에 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열두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왔다. 공간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아마 어떤 기준으로 생각해도) 한국과 스페인은 그렇게 멀지만, 단지 비행시간 12시간 만큼 떨어져있다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멀지는 않은 것처럼, 며칠 아니면 몇 주만 지나면 다시 가서 un cafe con leche, por favor을 말하게 될 것 처럼 느껴진다. 

돌아와 오래 못본 가족들을 보고, 비워둔 집안을 정리하고, 직장에 출근해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터넷 설치 같은) 다양한 잡다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이주일이 지났다. 아직 바르셀로나 집앞 광장의 탑과 종소리, 울창한 나무, 파란 하늘과 선명한 태양빛, 야외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지만 그 감각이 벌써 조금 흐려진것 같아 약간은 서글프게 느껴진다. 항상 그렇듯이, 그곳에 있었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살아간다. 그곳을 떠나와야 거기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더 잘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되어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과 글자를 몰라 문화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오래된 집에 비싼 돈을 주고 살면서 이게 왠 고생인가 생각했던 때도 없진 않고, 맛있고 다채로울것 같은 스페인 음식이 금새 그게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종종 묻는 것처럼) 또 갈 기회가 있다면 가고 싶은지 묻는다면 분명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그라시아의 우리 집에서는 새벽 2시까지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집앞 광장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