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놀이

Louis Lunch, New Haven, CT.

바리차 2016. 5. 13. 11:57

실로 동부의 꽃다운 계절이 왔다.

학교는 방학을 했으나! 결코 놀기만 하지는 않는 우리 부부는! 이 따위 설레는 방학과는 무관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5월을 생산적으로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눈은 부시고. 내일부터는 다시 흐려진다 하고. 꽃다운 계절은 금방 가 버릴테고. 학교 캠퍼스는 도무지 일할 맛이 나지 않으니. 룰랄라 어제 저녁으로 먹다 남은 김밥 한 줄을 싸 들고 뉴헤이븐으로 예일대 학생 놀이를 하러 떠났다. 거기서도 충분히 (더) 생산적일 수는 있으니

(사실 집에서 학교 캠퍼스까지 30분, 뉴헤이븐까지 50분으로 차이는 없다)


일단 끼니부터 해결. 도착하자마자 전에 찜해 둔 Louis Lunch에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한 줄 김밥은 후식!)


자그마치 1895년부터 있던 햄버거 집인데,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예일대 도서관에서 백 년 전 훔쳐다 놓은 듯한 테이블과 의자가 '숭고하게' 있다.


이렇게.


그런데 너무 좁아서 이 의자에는 (관찰한 바로) 가게 손님 중 절반도 앉지 못할 거라 사료된다.


가게 운영시스템은 옛스러움이 있다. 메뉴는 햄버거와 치즈버거 두 종류 뿐이고, 양파와 토마토를 추가할 것인지만 말하면 된다. 버거에 야채는 없고, 버거 빵은 화이트 토스트다. 패티는 작은 아궁이 그릴 같은 곳에 직화되어 나오는데 미디엄 레어로만 먹을 수 있고, 주문을 하고 받기까지 20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주문을 받고, 옆에 있는 젊은이는 묵묵히 패티를 만들고, (정말 얇게) 슬라이스한 양파와 토마토를 올려 손바닥만한 일회용 접시에 버거를 낸다. 사진에 보이는 종이가 주문받을 걸 직접 손으로 쓰신 건데, 이름/주문내역을 쓴 후 버거가 나오면 빨간색 펜으로 슥슥 그어버리시더라. 여느 동네 맛집처럼 현금만 받는다.


버거나옴. 하나에 6불. 토스트는 집에서 구운 것과 확실히 다른 것 같고 (왜???), 패티는 불향이 입혀지니 맛있다는 생각은 들게 한다. 담백하고 깔끔하고 과하지 않은 맛인데, 황교익씨의 평을 흉내내보자면

"이 집은 맛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이런 집은 꼭 그냥 계속 있어야 해요. 백년을 이렇게 지키고 있었다? 그게 포인트죠"

정도 되겠다.

사실 나는 가게에서 나와 길을 걸으면서 호일에 돌돌 말아온 김밥 한줄을 후식으로 더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우리의 생산적인 하루는 어떠했나 하면.

바리따씨는 스타벅스에서 저 책을 약 3시간동안 20페이지 읽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잔뜩 화가 나서 chill out 해야만 했다. 번화한 대학도시의 카페는 너무 정신사나워... 겨우 읽은 20 페이지 내용도 기억이 안난다며- 부르텅꾸르텅

나는 이 곳 맨체스터에서의 지루함이 사실은 "평안"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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