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놀기

몬탁(Montauk, NY) 4.8-9. 2017

바리차 2017. 4. 12. 10:44

미동부에 드디어 봄기운이 온다. 4월에도 한 번씩 꽃샘추위(the last cold snap: 오늘 배운 표현이라 굳이 적음)로 눈이 오기 때문에 안심할 순 없지만, 집을 나서는 길. 코트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뜬다. 

올 봄은 롱아일랜드 땅끝마을 몬탁에서 맞이하기로 했다. 이터널 선샤인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몬탁은 우리가 사는 코네티컷 맨체스터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뉴런던으로 가서 페리를 타고 롱아일랜드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가는 길에 퀸즈에 사는 지인과, 맨하튼에서 인턴을 하다 곧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촌동생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퀸즈에서 토요일 한나절을 보내기로 했다.

퀸즈 아스토리아 공원에서 바라본 맨하튼

작년에 사촌동생이 퀸즈로 오면서 자주 가게 된 아스토리아. 맨하튼은 주차비가 너무 비싸고 들어갈 때 톨비도 만만치 않아서 (평일에 간다면 톨비+주차비가 하루 60불은 된다), 우리는 보통 퀸즈에 스트릿 파킹(무료)을 하고, 맨하튼으로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퀸즈에서 그리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아스토리아 지역은 뉴욕시티에 살 기회가 있다면 거주하고 싶은 곳이다. 맨하튼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한인타운인 플러싱이 근접 거리에 있으며, 맛집도 많이 모인 곳이다. 무엇보다 허드슨 강을 끼고 맨하튼 스카이 라인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공원이 있어서 속이 탁 트인다고 할까. 이번에도 지인을 만나고 바리따씨와 함께 공원 산책을 하며 지는 해를 보다가,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 부러워" 하다가, 아 바람이 많이 분다 춥다 춥다 하다가 호텔로 발길을 옮겼다. (아! 가는 길에 저녁으로 먹은 플러싱의 대성칼국수 수제비가 쫄깃하게 맛있었다는 기록도 남기고 싶다)

하루 밤을 퀸즈와 몬탁의 중간 지역에서 보내고 몬탁으로 이동. 마침 앞서 가는 차 번호판이 I LOVE MONTAUK이다. 미국에선 차 번호판을 받을 때 추가 비용을 내면 원하는 번호나 문구를 사용할 수 있다. 노란 색이 최근 뉴욕주 기본 번호판이지만, 번호판 디자인도 바꿀 수 있다. 어쨌건. 앞서가는 당신은 몬탁에 사나보오... 좋겠소... 하며 꽁무니를 따라갔다. 

아참. 호텔에서 2마일 거리에 Big Duck 이 있어 잠시 들렀다 갔다. 별 거 있는 건 아닌데, 오리 안엔 기념품 샵이 있다. 바리따씨가 오리를 좋아하므로 신기해 하며 사진 한 방을 찍었다. 한 시간을 좀 더 달려서 도착한 몬탁! 

몬탁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요 등대 되시겠다. 이게 뉴욕주의 첫 번째 등대라는데, 1796년 조지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인가 하에 지어졌다고 한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러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다. 우리는 근처 state park에 차를 대고 등대 오른편에서 걸어서 해변으로 갔다. 

바다가 어찌나 반짝이던지. 쌓아놓은 돌들을 보고, 누가 소원을 빌었나 문득 궁금해졌다. 미국인들도 돌을 쌓던가? 저 바다 끝으로 가면 영국이 나올 텐데 하며- 또 다른 끝마을을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영국에 있을 때도 웨일즈에 가보진 못했지! 등대가 침식될까 큰 바위덩어리로 해변을 막은 방파제를 걷다가 등대를 떠났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몬탁 안 샌드위치 가게. 이 사진을 굳이 찍은 이유는 내가 바보짓을 했기 때문이다. yelp에서 668 gigshack 을 찾아 갔는데, 668이 문자로 적혀있어서 여기를 같은 가게로 인식을 못한 것이다. 가게를 찾다 "오빠 668 말고 여기도 괜찮은데? 668은 어디야? 이 근처에 있나?" 라고 했더니 바리따씨가 '얘가 무슨 소리를 하나'하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10초 정도 지나고- 심지어 이 가게를 3미터 정도 지나치고 나서야 "아! six six eight! 668이구나 ㅋㅋㅋㅋㅋㅋ" 했다. 결코 웃기려고 한 건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zero를 영으로 말한 적도 있는 녀자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숫자와 영어문자의 전환이 빨리 되지 않는!

668에서 먹은 고가의 샌드위치. 비수기라 몇 개 없는 몬탁의 식당이 다 문을 연 것도 아닌데다가, 워낙 관광지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가 음식에 비해 굉장히 오버 프라이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로와상에 그릴드 치킨을 샌드위치로 낸다는 것이 신선해서 집에서 나중에 해 먹으려고 찍었다. 음식 맛은 보통이었지만,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는 좋았다. 여름에 와서 밖에서 칵테일 한 잔 마시면 만사 좋을 그런 곳.

점심을 먹고 다시 해변으로.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에서 한 두 블럭을 가면 롱아일랜드 남쪽을 쭉 이은 해변을 만난다.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Umbrella beach를 찾으려다가 포기하고 그냥 아무 해변이나 잠시 걷기로 한다. 20도가 넘는 날씨였지만 아직 바다 바람이 차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세 명만 앉아있더라는. 아 추워 추워 하며- 왜 우린 추울 때만 해변에 올까 하며- 작별을 고한다.

몬탁에서 퀸즈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들른 wolffer estate 와이너리. 롱아일랜드에는 와이너리가 많기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주로 north fork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롱아일랜드는 창이 두 개인 포크 모양인데, 위쪽 지역을 north fork 라고 하고 아래쪽 지역을 south fork 라고 한다. 뵐퍼 와이너리(저 wolffer의 o 위에 움라우트가 있음)는 몬탁에서 나오는 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포도 철이 아니라 와이너리는 허허벌판. 

뵐퍼 와이너리가 인기가 많은 건 포도 밭을 보면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꽤 세련되게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 사는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목격되는 곳이기도 하다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우리는 와이너리 구경을 대충하고!

이 어여쁜 로즈 와인 한 병을 사고 여행을 마무리한다.  이 와이너리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가 되는 서머 인 어 보틀 와인. 디자인이 화려해서 와인을 다 마시고 꽃병으로 활용하기 좋은데, 이 아이는 좀 특별한 날 따기로 했다. 

다행이다. 한 번은 가고 싶었는데, 몬탁도 이렇게 다녀온다. 가기 전에 이터널 선샤인을 복습하고 그 잔향으로 여행하려고 했는데, 여유가 없었던 관계로 그저 다녀오기만 한 건 아쉽다. 머문 호텔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보라색 머리를 따라한 한 여자를 본 것으로 아쉬운 마음은 묻어두련다. 

집에 오기 전 만난 사촌동생의 한 마디가 남는다.

"거기 이터널 선샤인 배경으로 찍은 거 알고 계세요? 좀 옛날 영화긴 한데"

나의 청춘이 그 녀석에겐 옛날이라니. 바리따씨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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