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따씨 방

첫 하프마라톤 후기

바리따 2016. 10. 9. 10:39

하프마라톤을 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http://enjoydoc.tistory.com/42) 신청을 한지 어언 한달, 레이스 날이 다가왔다. 8시에 시작하는 일정에 맞춰 6시쯤 일어나 바리차씨가 미리 싸준 김밥을 마구마구 먹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려 챙긴 후, 레이스가 열리는 Hartford로 향했다.

7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이미 꽤 많은 사람이 와있었다. 올해 경주에 참여한 인원은 대략 마라톤 2000명, 하프마라톤 5000명, 5K가 2000명으로 총합 9000명 정도인 듯 하고, 가족들이나 동네 주민 등의 관중이 50000명 쯤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하트포드의 인구가 대략 12만명 정도이다). 아무튼 이 동네에서 본 인원 중 가장 많은 인원이었고, 베이스캠프인 Bushnell park가 이렇게 북적거리는걸 본건 처음이었다. 그 열기와 레이스를 준비하는 참가자의 의욕에 찬 표정이란. 설치된 부스 들을 한번 살펴본 후 웜업을 하려고 했는데, 시작 전에 혹시나 해서 화장실을 들렀다. 줄이 너무너무너무 길었고, 결국 시작 2분 전쯤 겨우겨우 출발선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코스는 이렇다.

비록 첫 하프마라톤 참가지만 나름대로 2시간 안으로 들어오고자 목표를 잡았었는데, 너무 늦게 출발선으로 가서 페이스 메이커를 찾기도 힘들어 일단 그냥 달리자 하고 9000명의 가장 뒷쪽에서 시작을 기다렸다. 숨을 돌릴새도 없이, 레이스가 시작했다. 출발선의 열기를 뒤로하고, 자 이제 뛰기 시작한다 - 생각했지만, 이렇게 뒤에서 시작하면 첫 1-2마일은 거의 걷는 수준으로 뛰게된다. 그래도 8년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뛰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흥분되고 즐거운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레이스 초반부의 사진 - 1

레이스 초반부의 사진 - 2 (저 광고판 참 잘달았네)

5K (3.11 마일) 정도 지점에 다다르니 몸도 좀 풀리는 것 같고, 무리들이 분산되어 제 페이스를 갖추고 뛸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 메이커를 찾을 수 없어서, 내가 원하는 (혹은 그 이상의) 기록을 낼듯한 사람을 찾아 지정해서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멜백 (물통이 들어있는 백팩)을 등에 매고 안정된 자세로 달리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여성 주자가 눈에 뛰었다. 그렇게 그녀의 페이스에 맞춰서 뛰다보니 오어느덧 10K 지점에 다다랐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53분 - 54분 정도 였던듯 하다. 와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는 마음과, 다소 오버페이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연습으로 제일 길게 뛰었던건 11 mile인데 10 min/mile 정도로 천천히 뛰었기 때문에 차이가 많이 났던 것이다. 많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쯤에서 갈수록 빨리 달리고 있는 나의 페이스 메이커와는 이별하기로 한다.

10K를 달릴때는 마칠때가 되면 그렇게 힘들더니, 하프마라톤을 달리니 10K가 정말 빨리 찾아온다. 자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나머지 10킬로미터를 달리자 - 라고 결의를 다지지만, 이제 슬슬 발목이 뻣뻣해지고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 마일마다 놓여진 게토레이를 조금씩 마시면서 슬슬 떨어지려고 눈치보는 페이스를 다잡아본다. 그렇게 2-3마일이 더 지나고, 여기저기가 조금씩 쑤셔오는 가운데 이제 마지막 1/4이 남았다. 페이스가 좀 떨어졌지만, 이정도면 2시간 언더로는 충분할 것 같은데? 하면서 마음을 좀 놓았다. 문제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가면서 더이상 페이스 체크를 할 수 없게 된 것. 이제 핸드폰은 그냥 대기모드로 두고, 무리에 맞춰서 뛰기로 한다. 새끼 발가락에 크게 물집이 잡혔는지 그쪽 발을 디딜때마다 편치가 않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주자들이 초가을의 도시 풍경을 담고있는 코스를 칭찬하고 있다 - 와 정말 아름답다 하며-,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도 주변 풍경을 한번 더 본다. 조금 더 감흥을 담아서. 아마도 내년에 이 레이스는 참여하지 못할테니까.

11마일 정도에 다다르니 낯익은 풍경이 보인다. 아 이 길만 따라가면 이제 결승점이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꺼질락말락한 핸드폰을 한번 확인해본다. 앗, 너무 마음을 놓았는지 2시간이 간당간당 하다. 같이 가던 무리의 페이스가 전체적으로 느려졌던 모양이다. 꽤 지친 상태였지만 다시 페이스를 올려본다. 아 언제 끝나 를 10번쯤 연달아 생각하다보니 이제 정말 결승점이 보인다. 자, 이제 마지막 스퍼트 -

목표했던 2시간 이내를 겨우겨우 달성하고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에 너무 빠르게 달려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고 결승점에서 사진을 찍었던 아내가 아쉬워했다. 기념품을 받고, 완주 메달을 걸고 기록을 확인한 후, 이런저런 기념사진을 찍고, 먹거리를 먹고, 보스턴의 맥주 중 하나인 Harpoon IPA 를 마시고, 그렇게 마무리했다. 하프는 조금 길다, 역시 나는 10K 정도가 더 맞는것 같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하프를 2-3번쯤 더 하고 이제 풀마라톤도 뛰어봐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라톤 후기를 남기는건 언제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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